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 밀란 쿤테라, 『느림』 중에서

《느림》전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속도’의 개념을 재고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산업화, 과학화, 현대화를 거치는 동안 ‘빠름’은 발전과 진보의 다른 이름으로서 우위를 점유하게 되었다. 예술이나 문화의 분야에서도 서구를 빠르게 따라가는 것만이 발전과 진보를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자신의 속도를 놓쳐 버린 채 거대한 서구문화담론의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속도 개념이 다르듯이 개개인의 속도에 대한 경험과 기억 역시 다르며, 예술의 분야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자각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들만의 고유한 속도를 되찾으려는 작가들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의 7명의 참여작가, 김수자, 김영진, 박홍천, 배병우, 육근병, 이불, 최정화는 서로 다른 자신들의 속도를 고수하며 한국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 주고자 한다. 조각천을 모아 바느질을 하고 보따리를 만들던 김수자는 그 보따리들을 트럭에 싣고 산보를 떠나는 작업을 보여준다. 김영진은 자신이 고안해낸 장치를 이용하여 액체 속을 유영(游泳)하는 텍스트들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물들은 사라지고 느리게 움직이거나 혹은 정지해있는 사물들만이 남게 되는 박홍천의 사진은 ‘느림’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한민족의 역사성과 작가의 일상이 오랜 시간동안 투영된 작업이며, 육근병의 비디오 작업은 새벽이 밝아오는 실제 시간을 영상에 담아낸 작업이다. 이불은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한 사이보그의 이미지를 통해 테크놀로지의 빠른 발전과 그 속에서의 여성, 혹은 우리 사회에 대한 고정적인 시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최정화가 보여주는 로봇과 모형 경찰관 역시 산업화, 현대화 속에서 ‘빠름’만을 추구해왔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가 2000년을 맞아 첫 전시로 선보인 《느림》전은 1998년 7월과 8월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열렸던 호주 현대작가전 《언홈리(Unhomely)》전에 대한 교환전으로 기획되었고, 1998년과 1999년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미술관과 시드니의 뉴 사우즈 웨일즈 미술관에서 선보여 많은 호응을 얻었던 전시이다.

 

> 출판: 『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