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은 회화에서부터 드로잉, 오브제, 설치, 비디오, 책에 이르는 폭넓은 매체를 사용하여 이미지가 가진 허구성이나 사회적으로 교육된 개념으로부터 탈피하는 작품을 제시한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숙고하게 한다. “당신이 보는 것(what you see)이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닐(not what you see)수도 있다”는 의문을 통해, 김범의 작업들은 내면의 심리와 외부 현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드러낸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김범》 개인전에는 총 15점의 신작과 미발표작이 소개된다. 지각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온 작가는 사회적으로 학습되거나 규정되어 온 시각적 인지 방식 자체를 전복시킴으로써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나 상황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3층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교육된 사물들(Educated Objects)>(2010) 시리즈는 교육이 개인의 정체성, 가치관, 관념, 인지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루는 설치 작품이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A Rock That Learned the Poetry of JUNG Jiyong)>,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A Rock That Was Taught It Was a Bird)>,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Objects Being Taught They are Nothing but Tools)>,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A Ship That Was Taught There is No Sea)>의 총 4점으로 이루어진 본 연작은 사물의 기능적 특성과 의인화된 성격을 대비시켜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일방향적인 통제성, 획일성을 보여줌으로써 교육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2층 전시장의 <볼거리(Spectacle)>(2010)는 야생동물의 생태를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일반적인 먹이사슬의 관계를 역으로 치환하여 영양이 치타를 추격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이 영상은 안과 밖, 위와 아래 등 상대적인 위상들이 지니는 당위성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을 반영한다. 그 외에 머이브리지의 연속촬영 사진기법에서 착안해 제작한 <말 타는 말 (머이브리지에 의한)(Horse Riding Horse (After Eadweard Muybridge))>(2008)과 일상 사물들이 마치 동물의 시체처럼 부패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고속촬영으로 담은 <생명을 잃은 사물들(Inanimated Objects)>(2007)이 전시된다. 또한 상징적인 상황들을 단편적으로 묘사한 10개의 드로잉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10개의 움직이는 그림들(10 Animated Drawings)>(2007)과 1990년대에 제작된 드로잉 모음도 함께 선보인다.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을 잇는 신작인 <전도(顚倒) 학교 설계안(A Draft of a School of Inversion)>(2009)과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설계안(A Draft of a Safe House for a Tyrant)>(2009)은 설계도 등을 복사하는 데 쓰이는 사진기법인 청사진을 이용해 건물의 외관과 다른 실내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건물구조를 역전시키거나 상상과 현실의 만남을 통해 사회조직 내의 인간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기존의 검은 형태의 인지적 회화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친숙한 고통(Intimate Suffering)>(2008)은 출구가 모호한 미로를 회화적 형식으로 그린 연작으로, ‘문제’에 대한 인간의 해결 본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07년부터 신문에 실린 식물과 흙의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식물을 키우는 연작 <무제 (그 곳에서 온 식물들)(Untitled (Plants from the Places))>(2007-현재) 등이 소개된다.

<눈치(Noonchi)>(2009)는 <변신술(The Art of Transforming)>(1996)과 <고향(Hometown)>(1998)에 이은 세 번째 아티스트북으로, 허구의 차원에 살고 있는 개가 독자와의 관계를 통해 현실의 차원에 존재하기를 열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층 라운지에서는 일상적인 사물과 풍경의 모습을 이용하여 만다라(Mandala)를 은유한 설치작업 <꽃(Flower)>(1999)을 선보인다. 또한 전시와 함께 작가와의 인터뷰가 담긴 모노그래프가 발간되어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다 심도 깊게 만나볼 수 있다.

 

> 출판: 『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