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는 2012년 세번째 라운지 프로젝트에서 《노영신 – 12 years of paper》를 선보인다. 라운지 벽면에 펼쳐진 드로잉은 25년간 아티스트와 주부 –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림에 대한 애착과 성실함으로 쉼없이 작업해 온 노영신의 작품이며, 긴 세월 어머니가 수없이 그리고 쌓아 놓았던 그림들을 창고에서 끌어낸 작가의 딸이자 기획자인 이지은의 시각적 기억이기도 하다.

아트선재센터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라운지는 2, 3층 전시장보다 다양한 관객이 전시작품과 만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소개되도록 열려있는 공간이다. 매우 개인적인 삶 안에서 이루어진 창작활동의 결과물로 자신과 딸, 친근한 주변 사람들에게만 사랑받았던 노영신의 그림들이 여기 새로운 관객에게 소개되면서 어떤 모습으로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는지, 그 탄생의 순간을 공유하는 장이 되기 바란다.

노영신

화가나 작가라는 이름 달기를 어색하는 노영신은 요즘 미대 졸업생이 젊은 작가로 시작하여 기성 작가가 되어가는 일련의 단계별 과정을 겪지 않았다. 흔한 포트폴리오도 없고, 제도 안에서 활동하는 미술 전문가들과 일을 해본 경험도 없다. 미술계의 변화나 작가들의 부침을 보고 들었으나 그에게 상관없는 일이었으며 끈질기게 작업을 하면서도 어느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가정을 꾸리며 생활 반경이 넓지 않아 보는 것이 많지 않고, 따라서 그림의 소재가 단조롭다. 밖에서 논밭을 보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기억 속의 논밭을 다시 그리고, 그린 그림을 보고 추상적으로 또 그린다. 제한적인 동선에서 비롯된 보통의 풍경이 노영신의 작업에서는 매우 특별한 색으로 그려진다. 그의 그림은 자연스레 가족의 생활 환경, 딸의 성장, 변화와 고스란히 같이가는 한 사람의 시간과 끈질긴 미술의 과정을 담고 있다.

노영신은 2012년 비로소 미대를 갓 졸업한 딸이 만든 ‘존하세 zoneHASE’ 라는 공간에서 12년 동안 잠자던 그림들을 꺼내 걸어 볼 수 있었다. 작품의 재료, 그리기 방식, 무엇을 그렸는가 등 자신의 오래된 관심사를 떠나 자유롭게 이웃하고 어우러진 그림들을 보는 것이 신기했고, 구식 액자를 벗어나 가볍게 그룹 지어진 자신의 드로잉이 낯설었다. “엄마는 화가야?” 라는 딸의 쉬운 물음에도 당황했던 긴 시간의 인터뷰로부터 몇 달간 딸과 함께 했던 작업을 통해 만든 12 years of paper 를 이제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서 선보인다.

이지은

올해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이지은은 예술학을 전공했지만 동시대 미술이 아직도 어렵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림과 같이 살았는데 여전히 미술이 낯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라는 동안 자신을 만들어 왔던 시각적 기억을 생각하고, 그 성장의 시간을 따라 이어 볼 수 있는 어머니의 그림을 꺼내어 전시하며 기획자로서 처음 걸음을 떼었다. 12년전은 이지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의 그림이 갤러리에 걸려진 것을 보았던 때이다. 그 이후의 엄마의 작품들은 탄생과 동시에 시험지에 덮여 어디엔가 쌓였다가 이사 때마다 잃어버리는 것으로 그 끝을 맞았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항상 마음에 두었던 엄마의 전시를 기획했다. 가도 가도 모래가 밟히는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종이 위의 그림들을 전부 펼쳐 볼 수도 없었다. 몇날 며칠를 들춰보며 감각에 기대어 선발한 그림들을 자신의 성장 시간별로 나누고 엄마는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그림을 걸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이지은은 예전과 지금이, 전통적 미술의 가치와 현재의 미술의 모습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미술관에 가지고 나오면서 동시대 미술 제도 안,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12 years of paper》를 다시 펼치게 되었다.